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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군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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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군자정은 정선 전씨 전세걸과 전세택이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1802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함양군에 위치하며, 하천 내 자연 암반 위에 조성되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조선 후기 정자 건축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원형 복구가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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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군자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함양 군자정
함양 군자정 이미지
함양 군자정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380
지정일2005년 10월 13일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육십령로 2590 (서하면)
소유자정선전씨 거연정 문중

2. 역사

함양군 서하면 봉전마을은 조선 시대의 학자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있던 곳이다. 선생은 처가에 들를 때면 군자정이 자리한 영귀대에서 머물며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정선 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의 5대손 전세걸과 전세택 형제가 1802년(순조 2년)에 정여창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 정자의 이름인 '군자정'은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건립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정자 내부의 마루는 원래 우물마루였으나 후대에 장마루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함양군에서 원형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3. 건축

거연정으로부터 하류 쪽으로 약 15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나, 정면의 주칸(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을 5자, 측면의 주칸을 4자 정도로 잡아 전체 규모는 작은 편이다.

군자정은 천연 암반 위에 단독으로 세워진 중층 누각 건물이다. 내부에는 방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사방이 트인 개방적인 구조이다.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정면 우측에 판재로 만들어 설치하였다. 4면 모두 기둥 바깥쪽으로 약 15cm에서 18cm 정도 마루를 연장하여 계자난간을 둘렀다. 마루는 현재 장마루가 깔려 있는데, 원래는 우물마루였으나 후에 변형된 것으로 추정되며, 함양군에서 원형 복구를 추진하고 있다.

평탄한 천연 암반 위에 건물을 세웠기 때문에 초석은 사용하지 않았다. 기둥은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으며, 특히 누각 아래층 기둥인 누하주(樓下柱)는 직경이 큰 재목을 약간 틀어지거나 울퉁불퉁한 자연스러운 형태 그대로 다듬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4면의 추녀 끝부분에는 활주를 세워 건물의 안정감을 높였다.

기둥 상부는 익공 장식 없이 간결하게 직절(直切, 곧게 자름)하고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보아지로 마감하였다. 창방(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가로 부재)과 처마도리 장혀(처마 도리를 받치는 부재) 사이에는 소로(小累, 작은 장식 부재)를 끼워 장식하였다.

가구(架構,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구조)는 5량 구조이다. 대들보 위에는 보 방향으로 판재를, 도리 방향으로는 2단의 각재를 짜 맞춘 십(十)자 형태의 부재를 놓아 종보를 받치고 있다. 종보 위에는 대공(종보 위에 놓여 종도리를 받치는 짧은 기둥) 없이 종보가 직접 종도리 장혀와 종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좌우 측면에서는 충량(측면에서 대들보와 연결되는 보)을 보내 대들보 위에 얹었는데, 충량의 머리 부분은 직절하였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며, 단청은 칠하지 않았다.

4. 지정 사유

하천 내의 자연 암반 위에 세워진 정자 건물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건물의 입면 비례가 적절하며, 조선 후기 정자 건축 연구에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1]

5. 정여창과의 관계

서하면 봉전마을은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있던 곳이다. 정여창은 처가에 들를 때면 현재 군자정이 위치한 영귀대에서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훗날 정선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 공의 5대손 전세걸과 전세택이 일두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02년 이곳 영귀대에 정자를 세웠다. 이들은 정여창과 같이 학식과 덕망 높은 군자가 머물던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정자 이름을 '군자정'이라고 지었다.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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